《이 과장의 퇴근주》에서 유미 씨는 창협 씨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요. 어떤 의미예요?
유미 창협 님은 언제나 좋아하는 게 있어요. 저는 좋음을 느끼는 역치가 높은 사람이라, 좋다고 말할 만한 게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무언가 좋아지면 그게 왜 좋은지 탐구하는 게 기본자세더라고요. 골똘히 고민한 걸 언어로 풀어내는 것도 좋아하고요. 저는 어떤 개념에 대해서 딱 맞는 표현이나 설명을 들었을 때 엄청난 쾌감을 느껴요. 속이 시원한 느낌 있잖아요. 제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개념도 잘 표현해 보고 싶어서 단어들을 이리저리 만져보는데, 창협 님은 그걸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같이 대화하면 언제나 재밌고 짜릿했어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는 뜻도 될까요?
유미 맞아요. 밖에서 다 들여다보이는 유리 집에 사는 사람 같아요. 다들 그러실진 모르겠지만, 관심 가는 사람이 생기면 SNS를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저도 페이스북에서 창협 님을 열심히 검색해 봤는데, 아주 옛날부터 솔직하게 글을 써왔더라고요. 표현 하나도 뾰족하게 쓰려고 애쓰다 보니까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속내가 다 보이는 대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요.
창협 저를 그렇게 봐줘서 고마워요. 무언가에 쉽게 몰두하는 모습을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좋게 봐주는 사이네요.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해져요.
유미 음,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처음 봤을 때 향수도 안 뿌렸는데 좋은 냄새가 나더라고요. 저는 향을 믿거든요. 내가 의도할 수 없는 영역에서 향에 대한 호불호가 결정되는데, 그 냄새가 좋게 느껴진다면 유전자 단위에서 결혼하라고 명령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웃음). 둘째는, 항상 구두가 깨끗했다는 거예요. 8년이나 신은 오래된 신발을 새것처럼 관리하는 모습에서 확신했죠. 말하다 보니 한 가지가 더 떠오르는데 학생 때는 국밥도 잘 먹고, 고급 다이닝에서도 즐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 살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다양할 테니까요. 창협 님이 딱 맞는 사람이었죠.
창협 우리가 결혼을 하게 만든 공통의 사건도 있었어요. 한번은 오키나와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슈리 성에 놀러 간 적 있는데, 앞에 세라교복을 입은 긴 머리 학생이 서 있더라고요. 그 근처를 지나가니까 학생이 뒤를 돌아보는데 수염이 난 중년 아저씨였죠. 순간… 저와 유미 님이 눈으로 대화를 나눴어요.
유미 ‘이 사람을 불쾌하게 하지 말자. 자연스럽게 행동하자.’ 이런 대화를 한 거죠. 우리 둘은 마음속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긴급한 상황에서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저희는 우스갯소리로 그분을 결혼의 요정이라고 불러요.
오늘 대화에 다양한 요정이 등장하네요. 서로 꼭 마음에 들어서 결혼했는데, 같이 살아보니 어떤가요?
창협 자주 만나니까 이럴 바에는 같이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살면 서로 집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 같아요(웃음). 유미 님은 결혼 초반에 자꾸 자기가 집에 가야 될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도 불편하다고 거실에 나가서 자고, 급기야 나중에는 본집에서 자고 와도 되겠냐고 물어보고요.
유미 내 것이었던 걸 자꾸 나누는 게 영 익숙해지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다양한 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걸 오래 고민하는 사람이라 끌렸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뾰족한 사람이라는 뜻도 되더라고요. 저는 무던한 편이라 창협 님이 예민함을 드러낼 때마다 꾹 참았어요.
창협 연애 때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맞춰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고요. 예를 들면 같이 술을 마시고 잠들기 전에 저는 꼭 설거지를 마치고 싶거든요. 근데 유미 님은 하지 말고 같이 쉬자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술 마실 때도 꼭 따라줘야 해요.
유미 씨에게 이유를 한번 물어볼까요?
유미 남이 따라줘야 맛있는 게 있잖아요(웃음).
창협 그래 놓고 나는 꼭 안 따라줘.
유미 결혼에 대해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래된 에세이에서 읽은 말을 꺼내두고 싶네요. “좋을 땐 아주 좋고, 나쁠 땐 아주 나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