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편한 걸 추구하는 사람은 활동하기 편한 옷을 고를 테고, 안구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외출할 때 꼭 선글라스를 쓸텐데, 그런 의미에서 승민 씨의 비주얼은 어떤가요?
기본적으로 편한 옷을 선호하고, 예전부터 입던 걸 꾸준하게 입는 편이에요. 아, 옷을 사거나 고를 때 원칙으로 삼는 게 하나 있는데, 로고가 보이지 않는 걸 택해요. 물론 TRVR은 브랜드니까 로고가 드러나는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웃음), 제가 입는 옷엔 로고가 두드러지지 않아요.
이유가 있어요?
로고로 내 스타일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저는 ‘나’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의류를 대한다면 저를 나타낼 요소가 로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창 대학에서 강의할 때 브랜딩의 우선순위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이런 결론이 나왔죠. “사회에서 무언가를 디자인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의 브랜딩이다.” 즉,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거예요. 어떤 언어, 어떤 말투, 어떤 제스처를 쓰느냐에 따라 나는 다르게 보일 거예요. 패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즐기는 거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땐 외형을 통해 한 사람을 보여주는 일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패션이나 로고가 저를 대변하기보단 저라는 사람의 전체적인 조화가 드러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요. 어울리는 옷을 찾는 건 그다음의 일이겠죠. 나한테 잘 어울리는 옷이면 좋을 테고, 신체적 단점을 가려주는 옷이라면 더 좋겠죠. 드러내고 싶은 신체적 장점이 있다면 돋보이게 해주는 패션도 좋고요.
나한테 잘 어울리는 패션을 찾는 건 참 힘들어요. 여러 스타일을 도전해 보지 않으면 정확히 알 수 없는 일 같기도 하고요.
저한테도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저를 포함하여 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에게 질문하고 조언을 들어보면서 스타일을 찾아나가는 편인데요, 특히 배우자에게서 많은 조언을 듣고 있죠. 그러고 나니 확실히 제 스타일이 명확해졌어요. 저는 제 모습을 제대로 보는 데 한계가 있지만 저를 잘 아는 사람이 보는 저는 조금 더 깊이가 있거든요. 저는 거울 속 제 모습을 보는 게 전부지만 윤주 씨가 보는 저는 실체, 성향, 성격이 담긴 총체적인 저일 테니까요.
(중략) 최근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늘 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지만 밀도 있는 일상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에디터님 지난주 목요일에 점심 뭐 드셨어요?
네? 음….
한 번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몇 없을 거예요. 저도 그래요. 근데 누군가 저한테 “신혼여행 첫날 점심 뭐 먹었어요?” 하면 딱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우리 뇌는 매일 반복되는 일은 최대한 지워서 공간을 만들려고 하고, 여행처럼 특별한 일은 최대한 기억하려고 한대요. 그렇다면 일상을 여행처럼 채우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그럼 매일이 머릿속에 촘촘하게 남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하루를 여행처럼, 밀도 있게 채워 나가려고 해요. 요즘은 집에서 사이클 운동을 하면서 여행하듯 하루 밀도를 높이고 있어요. 프랑스에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라는 자전거 대회가 있는데요. 로드 사이클 3대 그랜드 투어 중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대회인데, 매년 프랑스와 그 주변국을 무대로 약 3,500km의 거리를 3주 동안 매일 달리는 레이스예요. 지금이 한창 그 시즌이어서 요즘은 대회 영상을 보면서 매일 아침 그리고 밤늦게 함께 사이클을 타요. 총 21개 스테이지로 구성되는데 어제는 열 번째 스테이지를 함께 탔어요(웃음). 골방에서 사이클 기구로 운동하고 있을 뿐이지만 제 나름의 여행이라 생각하며 지내는 거죠.
마음먹기에 따라 일상의 밀도가 달라지는 거군요. 앞서 경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경험은 작업하는 데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듯해요. TRVR로 처음 만든 제품이 ‘사이클캡’이라고 했는데, 그 당시 자전거 안장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으셨다고요.
저는 경험하지 못한 건 디자인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할 수야 있겠죠. 그런데 ‘진정성을 담을 수 있느냐.’라고 하면 의문이 생겨요. 상상으로 디자인하는 것과 경험으로 하는 건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에디터님은 칠레 음식에 관해 아시나요?
어… 전혀 모르겠어요.
(웃음) 저도 몰라요. 누군가 칠레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이것저것 검색해서 만드는 흉내는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없는 일이라고 봐요. 하지만 디자이너는 목적지가 있어야 하거든요. 기계보다 사람이 한 디자인이 아직까지 더 매력적인 이유는 디자이너의 인사이트를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인사이트가 담겨야 더 매력 있는 디자인이 탄생할 테니까요. 제가 지금 여기 있는 분들에게 강아지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모두 다른 강아지를 떠올릴 거예요. 그 강아지는 저마다 어디에선가 만난 적이 있는, 본 적 있는 강아지겠죠. 경험해 보지 못한 강아지는 떠올릴 수 없을 테니까요. 이처럼, 같은 걸 디자인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풀어내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다를 거예요. 저는 저만의 통찰력이 담긴 디자인을 할 텐데 그것은 오롯이 제가 경험한 것에서 나오겠죠. 진정성 있게, 다양하게 경험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재료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 디자이너라면 더 많은 색상의 연필을 가지고 디자인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지금껏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고 생각하세요?
경험의 양을 따지기보다는 계속 나다운 경험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살면서 할 수 있는 경험을 최선을 다해서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서요.
‘나답다’는 게 뭘까요?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제가 하는 모든 것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