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입니다. 산책을 다녀온 동료들이 편의점 컵빙수를 인원 수에 맞게 양손 가득 들고 들어왔어요. 예고 없이 찾아온 간식에 괜히 마음이 들떴습니다.
갈린 얼음과 팥, 쫄깃한 떡 몇 알이 전부인 단출한 빙수에 우유를 자작하게 붓고, 얼음이 천천히 녹아들기를 기다렸습니다. 각자 앞에 빙수 컵 하나씩을 두고 둘러앉으니 그날따라 한참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여름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그날의 풍경은 이상하리만큼 여름다웠습니다.
올해의 여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요. 저는 그날 빙수 한 컵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도 지금의 여름을 천천히 떠올려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마음으로, 오늘의 이야기도 함께 즐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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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찬란한 한낮 우리는 공원을 걸으며 아이스크림 가방에서 갓 꺼낸 몇 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하현은 봉투를 길게 찢어 아이스크림 바를 꺼내 들고 아삭아삭 무심하면서도 다정하게 씹는다. 강렬한 태양에 금세 녹아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능숙하게 어르는 한 손과 야무지게 먹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다가, 나도 모르게 “행복해 보인다.” 자그맣게 읊조렸다. 작열하던 해가 저물어 갈 때쯤 옆에 쌓인 아이스크림 봉투는 벌써 여섯 개. 스크류바, 수박바, 메로나, 따옴바, 폴라포, 탱크보이…. 아, 이 끈적하고 귀여운 행복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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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 시리즈 여름 삼부작 중 하나로 《아이스크림: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출간했죠. SNS에서도 자주 눈에 띄고, 출퇴근길 전철에서 읽는 사람을 종종 만나기도 했는데요. 일명 ‘아이스크림 책’을 낸 소감이 어때요?
크게 변한 건 없는데… 제 주위에서만 그런 거지만 뭐랄까, 아이스크림의 권위자 같은 게 돼서 “요새 무슨 아이스크림 맛있어?”, “아이스크림 좀 추천해 줘.” 그런 얘길 많이 들어요. “너는 아이스크림 갖고 책 한 권 쓴 사람이잖아.” 하면서요(웃음). 그게 너무 귀엽고 재미있어요.
카페에서 파는 고급 디저트가 아니라 동네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종류를 이야기해서 더 귀엽단 느낌이 있어요. 요샌 어떤 거 많이 추천하세요?
빙그레에서 나온 따옴바 패션후르츠맛이랑 책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천한 건데 해태에서 나온 아이스팜 자두맛이요. 정말 맛있어요. 맛없는 자두보다 훨씬 자두 같아요. 아, 하나 더 추천할게요. 어제 먹은 것도 맛있었거든요. 피코크에서 나온 요거트 아이스크림인데, 너무 맛있어서 한 통을 다 먹었지 뭐예요(웃음).
지금 추천해 주신 게 다 ‘수채화’ 종류네요. 아이스크림 이야기할 때 꾸덕꾸덕하고 밀키한 아이스크림을 ‘유화’, 맑고 가벼운 베리류를 수채화라고 말씀하시잖아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파예요?
아… 저한테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인데요. 자주 먹는 건 수채화 쪽인데, 제 안에서 아이스크림이란 단어를 딱 꺼낸다면 그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유화예요. 투게더나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거요. 자주 먹는 건 수채화지만 좀더 애정 있는 건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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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눈 대화에 전부 고개를 끄덕였는데 책을 읽으며 딱 한 대목에서만 갸웃하게 됐어요. “냉동 블루베리를 섞은 요거트도 아이스크림으로 치는 관대한 입맛”이라니, 요거트가 어떻게 아이스크림이에요?
아, 이건 부연 설명이 필요한데요. 제가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고 공복혈당장애 위험 진단을 받았어요. 그 이후 한동안 건강 챙긴다고 아이스크림 대용으로 먹곤 했던 건데, 냉동 블루베리를 컵에 잔뜩 붓고요, 요거트를 한 팩 뜯어서 넣고 섞은 다음 3분 정도 기다리는 거예요. 그럼 그게 완전한 고체가 돼요. 땡땡 얼어서 컵을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되죠. 그걸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단 욕구가 100퍼센트 충족돼요.
(끄덕이며) 인정, 그건 아이스크림이죠. 블루베리 토핑을 얹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웃음). 그럼 이참에 아이스크림의 범위를 한번 설정해 볼까요? 이를테면… 얼린 바나나는?
저한테 아이스크림은 ‘달콤한 고체 상태의 우유 얼음’이에요. 얼린 바나나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할 순 없지만 아이스크림 카테고리이긴 하죠. 근데 빙수는 아니에요. 엄연한 디저트예요. 왜냐하면 집에서 밥 먹고 “빙수나 하나 만들어 먹어야지.” 이게 안 되거든요. 친구를 만나서 “저기 빙수가 맛있대. 먹으러 가자.” 하는 먹거리니까요. 다만 슈퍼마켓에서 파는, 우유 부어 먹는 빙수는 아이스크림이에요(웃음). 그건 밥 먹고 “하나 먹어야지!” 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
기준이 명쾌해서 속이 다 시원하네요. 특별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있어요?
옛날엔 콜드스톤 정말 좋아했는데 이젠 다 철수한 것 같고, 나뚜루 좋아해요. 특히 녹차 아이스크림. 하겐다즈가 우유가 많이 섞인 꾸덕꾸덕한 녹차 아이스크림이라면 나뚜루는 좀더 천연 녹차의 맛이 많이 나요. 바코드류 아이스크림 중에는 빙그레 제품을 많이 먹고 있어요. 평소에 어디서 만들었는지 따지면서 먹진 않는데 이번에 책 쓰면서 먹는 아이스크림마다 어디 제품인지 하나하나 찾아봤거든요. 근데 빙그레에서 나온 사람처럼 제가 먹는 것 중에 빙그레 제품이 정말 많더라고요. 비비빅, 메로나, 따옴바, 붕어싸만코, 투게더….
아이스크림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녹는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빨리 먹어야 한단 인식이 있는데, 디저트 하면 많은 사람이 ‘여유’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아이스크림의 매력 같아요. 사람을 좋아할 때도 그 사람 자체가 괜찮아서 좋아할 수도 있지만 매력적이어서 좋아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문보영 시인이 어느 에세이에 ‘장 볼 때 아이스크림을 사면 마음이 급해진다.’라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 그게 저한테는 즐거움이거든요. 빨리 가서 먹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니까 그저 예뻐할 수밖에 없게 돼요.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에 대해 “아무도 봐주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멋대로 구는 것.”이라고 했죠. 이 대목뿐 아니라 하현 씨 글을 읽으며 평등이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종종 받았어요.
저한테 제일 멋있는 사람은 ‘강강 약약’인 사람이에요.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한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되려면 권력이나 권위에 쫄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려면 이미 권위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그걸 갖고 싶어 하지 않아야 해요. 근데 저는 권력과 권위가 너무 갖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전 아직 그런 사람이 못 되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아이스크림이 누구에게나 멋대로 녹을 수 있는 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아서예요. 근데 전 두려운 게 너무 많은 사람이어서 아이스크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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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의 녹싸 사장님은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아이스크림을 직업으로 삼아 10년째 가게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는 좋은 접객이란 결국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해요. 그러다 문득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다양한 기억을 많이 가진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도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요.
좋아하는 동사들이 언젠가 하나의 직업이 되고, 그 일을 하며 또 다른 사람의 기억이 되어가는 과정. 아이스크림 한 스쿱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꽤 먼 곳까지 생각을 데려갑니다. 오늘의 기분을 조금 더 잘 돌보고 싶다면, 아이스크림 한 입 베어 물고 이 이야기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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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팀 《AROUND》 Vol. 108
제작 비하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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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만들어지는 동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번에는 어라운드 홈페이지에서 새롭게 시작한 매거진팀 비하인드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기획부터 취재, 편집, 인쇄소 감리까지. 우리가 한 권의 책을 만들며 지나온 순간들과 그 안에서 나눈 생각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콘텐츠예요.
온라인 구독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콘텐츠를 시작으로 앞으로는 신간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어라운드의 브랜드팀이 일하는 모습까지, 지면에서는 미처 보여드리지 못했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전해드릴 예정이에요. 책 너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홈페이지에서 먼저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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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가 바라본 순간들,
〈건강한〉 한의약 웹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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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은 어라운드 브랜드 기획팀과 한국한의약진흥원이 함께 만드는 한의약 웹진입니다. 한의약의 다양한 이야기를 매달 새로운 콘텐츠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건강한〉을 만들며 ABC가 고민한 것은 ‘한의약을 어떻게 오늘의 일상과 가까운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까’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막상 어렵고 전문적으로 느껴지는 한의약을 단순히 쉽게 설명하기보다, 우리의 생활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고자 했습니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한의약 지식부터 제철 식재료와 레시피, 한의약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낯선 정보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결되는 이야기로 만드는 것. 그것이 ABC가 〈건강한〉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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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난히 시원한 이야기들로 가득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어쩐지 입안에 달콤하고 차가운 아이스크림 한 입을 물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러고 보니 슬슬 참기 어려워집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오늘 후식은 아이스크림으로 해야겠어요. 하현 작가님이 말했던 진하고 꾸덕한 ‘유화’ 쪽으로 골라볼까 해요. 님도 남은 여름에 작고 달콤한 순간들을 잘 챙겨 누리시길 바라며, 다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편지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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