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바빠질수록 새로운 것을 잘 시도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아침에는 가장 빠른 동선을 고르고, 점심에는 늘 가던 식당에 가고, 빵 하나를 살 때도 고민 없이 매일 들르던 곳으로 향합니다. 익숙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 편해진 거죠.
그런데 때로 별것 아닌 일에 잠시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목적 없이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가게에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고요. 걷다 멈춰 서서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멍하니 보거나, 아무 데나 주저앉아 책장을 넘기고 싶은 계절이니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것들에 마음을 내어주는 순간들을 이야기합니다. 갓 나온 크루아상을 사러 가는 아침처럼, 꼭 필요한 일이 아니어도 괜히 발걸음을 옮겨보고 싶은 날이 있잖아요. 아무래도 괜찮은 것들을 하나씩 곁에 두는 날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띄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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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햇살은 따끔거리지만 괴로울 정도로 덥지는 않다. 아직 성가신 모기가 출몰하기 전이다. 옷차림만큼이나 마음도 가볍다. 목적지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던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벤치에 앉은 이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이 좋은 계절이 다 가기 전에 한 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실컷 즐겨야 한다. 이때의 호사 중의 호사는 휴일에 공원의 나무 아래 앉거나 누워서 책을 읽는 일이다. 바람은 목덜미를 시원하게 쓰다듬으며 지나가고, 코로 들이쉬는 공기는 막 포장을 뜯은 듯 신선하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적절한 배경음처럼 멀찍이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햇살은 드러난 피부 위에 잎 모양으로 내렸다가 떠나기를 반복한다. 남편은 옆자리에 앉아서 (늘 그렇듯)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나는 행복이라는 모호한 감정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체감한다.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내 인생, 아무래도 복이 터진 것 같다. 그럴 때, 봄날의 나무 아래에서 읽기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 너무 무거워서 가지고 나가거나 들고 읽기 힘들지 않은 책, 사락사락 책장 넘기기가 편한 책, 읽다가 살짝 졸아도 괜찮은 책(괜찮다고 말해주는 책), 봄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책이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피엔스》나 《코스모스》(우리 집에 있는 가장 두꺼운 책들)는 안 된다. 그럴 때는 이런 책이 좋을 것이다. 필리프 들레름의 에세이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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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필리프 들레름은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쓴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완두콩 깍지를 까는 일, 첫 맥주 한 모금, 호주머니 속 작은 칼, 스노글로브, 일요일 저녁, 아침 식사 때 읽는 조간신문……. 그는 이렇게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서 쓴다. 그리고 행복은 시시콜콜하기 짝이 없는 것들과 아무래도 좋은 것들에 있다. 애써 구하지 않은 행복, 작은 것들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느닷없이 나타나 수줍게 등을 두드리는 어린 시절의 친구처럼 찾아오는 행복이 거기에 있다.
사실 인생이란 그런 것들이 전부 아닌가? 아, 물론 아니지. 괴로운 것들은 그 아래에서 넘실거리지. 이를테면 아침 일찍 화창한 공기 속을 산책하는 도중에 문득 마음을 어지럽히는 질문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지금 걱정해 봤자 소용도 없고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없는 일들이. 나는 내 마음이 어두운 얼룩으로 천천히 물드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고 나는 이 아침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걸을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인데도 말이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일까. 그러나 다행히도 너무 많은 것들이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다. 세상은 내 시선을 잡아끌고, 생각을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며, 귀를 기울이고, 냄새를 맡게 한다. 때로는 손으로 쓸어보고, 발로 디뎌보게 한다. 생각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산만하다. 집중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상쾌하다. 왜지?
나는 집중이라는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해 본다. 사실상 집중이란 현재와 관계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그래, 그렇기 때문에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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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팔을 펼쳐 모은 상태로 오래 책을 읽다 보면, 턱이 스르르 내려가 모래사장에 파묻힌다.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온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몸을 일으켜서 두 팔을 가슴 위로 마주 낀다. 이번에는 한쪽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거나, 이따금 읽은 페이지를 접어본다. 흔히 이런 포즈를 ‘청춘기의 포즈’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고 책을 읽으면, 서글프고 허무하고 작디작은 것이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고, 싫증이나 들쭉날쭉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게 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에 포함되는 것이다. 눈이 아닌 몸으로 책을 읽는, 그런 느낌이 든다.
―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중에서
그런 이유로 바깥에서 책을 읽을 땐 책에 오래 집중할 수 없다. 자꾸만 책장에서 고개를 들게 된다. 그 느낌이 좋다. 필리프 들레름이 쓴 것처럼 자세를 이렇게 바꿨다가 저렇게 바꿨다가 한다. 이런 것이 ‘눈이 아닌 몸으로 책을 읽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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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안경〉(2007)
한수희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영화 〈안경〉이 떠올랐어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이토록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밥을 먹고 바다를 보고 빙수를 먹는 장면들이 느릿하게 이어집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않아도 되는 섬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하루를 보내요. 저도 오늘 만큼은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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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운드 사옥은 독특한 형태와 하얀 타일 외벽 덕분에 오시는 분마다 한 번씩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펴보시곤 하는데요. 그동안은 수줍음 많은 어라운드 식구들 때문에 안쪽 풍경을 쉽게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라운드 사옥 곳곳을 담은 짧은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책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저희의 일상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을 거예요. 어라운드 사옥의 내부 풍경이 궁금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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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가 바라본 순간들,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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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하며,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이 론칭되었습니다. 지역의 문화와 예술, 문학을 존중하는 이솝은 어라운드와 함께 2020년부터 매년 한국의 명절인 추석을 기념하는 로컬 캠페인을 만들고 있어요.
올해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단한 유대와 화합을 짚풀공예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어요. 볏짚은 자연의 질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거칠고 불규칙하지만, 여러 가닥을 한데 엮어내면 저마다의 불완전한 올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하나의 아름다운 형태를 이루게 되는데요. 함께 연대하고 모일 때 더욱 견고해지고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우리의 모습을 짚풀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점차 잊히고 사라져가고 있는 짚풀공예는 단순한 생활 도구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문화예요. 마당에 깔 수 있는 너른 자리인 ‘멍석’ 위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앉아 식사를 하거나 등을 대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곤 했죠. 곡식이나 과일을 담는 ‘둥구미’에 귀한 먹거리를 담아 이웃에게 마음을 전하기도 했어요. 이러한 전통을 현대에 계속해서 이어가는 최석봉 전통 짚풀공예 장인의 손길로 완성된 멍석과 둥구미를 이솝 전국 매장에서 만나보세요. 피천득 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보자기 포장 서비스도 받아보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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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추석 연휴가 성큼 다가왔네요. 다음 레터는 긴 연휴를 사이에 두고 한 주 쉬어가려고 해요. 쉬는 동안 미뤄두었던 책도 한 권 펼쳐 보고, 무엇이든 괜찮은 것들에 마음 빼앗기는 시간도 가져보시길요. 꼭 해야 할 일도, 정해둔 계획도 잠시 미뤄두고요. 그러다 문득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만나면 잠시 멈춰 서도 좋겠습니다. 그럼 선선한 바람과 함께 10월의 두 번째 목요일에 다시 편지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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