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선을 나눕니다. 님, 오늘도 이부자리를 씩씩하게 털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셨나요? 서울에서의 네 번째 이사를 준비하는 요즘, 저는 타인의 보금자리와 동네 이야기에 촉각을 세우게 됩니다. 낯선 곳으로 나를 옮겨야만 하는 일에 조금 긴장도 되지만, 어디든 정을 붙여가는 저를 발견하게 될 걸 알아요. 원하든 원치 않든 새로운 풍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서울 생활에 어느덧 의연해진 저네요. 님은 낯선 도시나 동네에 살림을 꾸려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때마다 마트 계산원의 얼굴, 자주 마주치는 동네 강아지, 눈인사하는 옆집 주인의 얼굴도 달라진다는 걸 아시겠네요. 문득 이주의 이유는 다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깨끗한 새 노트를 펼치는 일처럼, 이사는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한 새로운 결심 그리고 낯선 도시에 놓인 나를 탐색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겠죠. 어떤 이유로 옮긴 걸음이든 응원을 보내며, 서울에서 전주로 훌쩍 떠나 집을 마련한 작가·뮤지션 오지은 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마음에 쏙 든 도시에서 회복을 경험하며, 새로운 인연을 맺어가는 그녀의 전주 생활에 귀 기울여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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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동물의 숲’에선 지나가는 주민에게 손쉽게 안부를 묻는다. 주머니를 기꺼이 펼쳐 보이며 가지고 있는 것들을 선뜻 건넨다. 빵, 과일, 생선…. 필요한 게 있을 땐 ‘그거’ 가지고 있느냐고 넌지시 묻기도 한다. 지은은 전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도 만나면 가방을 열어 책을 건네는 환대가 있다는 것을, 만나서 반갑다며 복숭아를 쥐여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지은은 긴 시간 발목에 달려 있던 추들을, 어쩐지 전주로 와 하나씩 떼어내기 시작한다. 마음이 좋아져서 전주로 온 건지, 전주로 와서 마음이 좋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간결한 보폭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걸음이 한결 굳세고 산뜻하다. 처음 밟는 땅을 걷고 있는 지은은 준비가 되면 이따금 이야기하겠지, “저, 공연합니다. 전주에서요.” 하고. 전라북도 ‘동물의 숲’에서, 간간이 초대장이 도착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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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걸로 알아요. 어느 매체에서 “소거법을 거치며 전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죠.
처음 이사를 결심하곤 많은 도시를 후보로 두었어요. 우선 서울과 수도권은 가장 먼저 제외했고, 경상도는 엄마와 이모들이 살기 때문에 제외했죠. 남은 곳 중 가장 마음이 간 데가 강원도여서 어느 겨울에 속초 한달살이를 하게 됐어요. 근데, 지내다 보니 여름엔 외지인이 몰려들고 겨울엔 모두 빠져나간다는 게 버겁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속초와 비슷하지만 속초보다는 관광객이 적고 현지인이 많은 고성에 가게 됐는데, 고성은 바다의 기운이 확실히 고요하더라고요. 그 바다가 제 음기를 증폭시킬 게 분명해 보였죠. 그런 곳에서 1년 정도 머물면 끝내주는 작업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음기에 휩싸였을 때 저 자신이 어떻게 될지 잘 아니까 꺼려지더라고요. 결국 강원도는 제외하게 됐어요. 그러다 ‘전주천’에 관해 듣게 됐죠. 여행자로서는 알 수 없는 생활자만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주천을 보러 갔다가 ‘여기다!’ 싶어서 천변이 보이는 집을 구해 월세살이를 시작했어요. 주변으로 높은 빌딩이나 왁자지껄한 번화가가 없고, 탁 트인 시야로 사람들이 사는 집과 천변이, 또 하늘과 산이 보이는 곳이라는 게 첫눈에 마음에 들었어요.
홍대 쪽에서 살 때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아가, 파주에 살 때는 작가로서의 자아가 도드라졌을 텐데, 지금은 직업인보다는 생활자 오지은으로서의 자아가 조금 더 힘이 있는 상태일 것 같아요.
의외로 반대예요. 오히려 동네에서 받는 무언의 압박이나 긴장이 없어서 ‘다음엔 어떤 작업을 할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지내요. 홍대 부근에서 살 때는 현재를 살기에 급급했고, 파주에서는 좋은 의미로 관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저는 10년가량 음악을 해오면서 너무 많은 일을 겪었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끔찍한 말도 많이 들었고, 그 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서 원래 있던 우울증이 훨씬 더 심해지기도 했는데요. 그런 마음을 파주에서 많이 달랠 수 있었죠. 홍대에선 힘껏 발산하고 파주에선 한없이 가라앉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가족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살아갈 도시를 다시 탐색하게 된 건데요. 사람들은 신변에 변화가 있을 때, 혹은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 좋아하는 나라나 도시에 가서 한달살기를 하잖아요. 저는 프리랜서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꼭 수도권에 있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전주로 오게 된 건데, 지금 저는 가장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전주에 살아서 좋아진 건지 좋아진 상태에서 전주에 온 건지, 그건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제 안의 시야가 또렷해져서 ‘내가 뭘 해야 되겠다.’랑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인식하게 됐어요.
그게 어떤 의미예요?
예전엔 뭘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아?’ 하는 생각이 컸어요. 누군가에게 들은 나쁜 말들을 쉬지 않고 생각했죠. 누군가는 내가 노래하는 걸 보며 포르노 배우처럼 노래한다고 하겠지, 내 음악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겠지, 작업물이 구리다고 하겠지…. 음악 작업을 할 때면 이런 계열의 끔찍한 생각이 PTSD처럼 떠오르곤 했는데 전주에 오고 나니 하나씩 정리가 되더라고요. 굉장히 깨끗한 책상을 갖게 된 느낌이에요.
깨끗한 책상이라면….
실제 제 책상은 엄청 더럽지만(웃음) 제 마음의 책상이 깨끗해진 거죠. 그 덕에 지금 저는 진짜 ‘생활자’처럼 살고 있어요. 일상도 잘 살피고, 작업에 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 동네에 완전히 녹아든 것처럼 지내고 있죠. 한번은 문화센터로 수채화를 배우러 갔는데요. 제가 거기서 막내더라고요. 제 바로 위가 65세(웃음). 요즘은 수영도 다니고 있는데, 잘 안 올라가는 할머니 수영복도 대신 올려드리고 마음 편히 수영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전주가 좋고 서울은 나쁘고, 전주 사람들은 착하고 서울 사람은 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건 당연히 아니에요. 뭐랄까…. 도시 분위기가 저랑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꼭 끝의 끝까지 간 동화에서 사는 기분이에요. 그런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게 신기할 때도 있어요. 도시 분위기 덕분에 마음가짐도 많이 바뀌었고요.
마음 건강도 좋아졌고요?
스스로 좋다고 말할 정도로 아주 좋아요. 작업과 저 사이 관계가 편해졌거든요. 예전엔 작업을, 특히 음악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생각이 ‘죽고 싶다.’였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는데 전주에서 만난 상담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음악을 하면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음악 작업을 생각하면 정신이 저를 지키기 위해 방어하는 것 같다고요. 안 돼, 그쪽으로 가지 마, 거기 가면 너 죽어, 하고 말렸던 거예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깨달았어요. 저는 음악을 하면서 상처받은 걸 그동안 무시하고 외면해 왔다는 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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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운드와의 대화에서 작가·뮤지션 오지은은 “앞으로 모든 북토크, 공연의 첫 회는 될 수 있으면 전주에서 하려고 한다.”는 결심을 전했어요. 그 이야기처럼 싱어송라이터 듀오 ‘오지은서영호’ 공연 〈그리움은 그만〉의 첫 회가 9월 전주에서 열렸는데요. 진솔한 목소리를 전주에 먼저 들려준 두 사람은 서울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많은 관심으로 티켓이 빠르게 매진되는 바람에 서울에서 다시 공연을 준비했다죠. 오지은서영호의 앨범 [작은 마음](2016)과 두 사람이 좋아하는 곡을 건넨다고 하니, 앵콜 공연에 함께해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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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103호에서 소개한 ‘워커비’와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전주에 자리한 워커비는 꿀을 활용한 감각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로, 사람들에게 ‘전주에서 꿀 파는 집’으로 기억되고 싶다 말해요. 어라운드 서포터즈 ‘어라운더’가 환절기에 사용하기 좋은 워커비 제품을 소개했으니, 아래 버튼을 눌러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살펴보세요. 댓글로 워커비 제품을 함께 사용하고 싶은 친구를 태그하면, 추첨을 통해 신제품 캐모마일 캔디와 보이스 케어 키트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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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송한 소매가 손목을 간질이는 계절이 왔어요. 목이 긴 양말을 꺼내 신고 외투도 단단히 여미게 되는데요. 이맘때 즐길 수 있는 일들, 이를테면 단풍 구경이나 제철 밤 쪄먹을 생각에 설레는 요즘이에요. 추운 계절인 만큼 더욱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담아 편지할게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어라운드의 지난 이야기 중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을 골라 들려드릴게요. 그럼, 다다음주 목요일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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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치 공간 모집
《AROUND》가 포근하게 놓일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찾습니다. 어라운드가 전하는 가치에 공감하며, 국내에서 카페·쇼룸·숙소 등의 공간을 운영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요. 언제든 신청할 수 있도록 모집 기간을 정해두지 않았으니 언제든지 우리에게 마음을 전해 주세요. 비치 공간으로 선정된 공간 운영자분께는 개별적으로 연락드릴게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버튼을 눌러 확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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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𝗟𝗢𝗧𝗧𝗘 𝗟𝗜𝗙𝗘𝗦𝗧𝗬𝗟𝗘 𝗟𝗔𝗕》 𝗩𝗼𝗹.16
Live and Taste ─ 환경적 웰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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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운드와 롯데백화점 문화센터가 계절마다 함께 발행하는 《LOTTE LIFESTYLE LAB》은 동시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며 다채로운 취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거진입니다.
16호 《Live and Taste》는 개인적인 취향은 물론, 그 너머의 지구적 가치관을 지향하며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환경적 웰니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 나의 곁을 둘러보며 더 좋아하고 무해한 하루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LOTTE LIFESTYLE LAB》은 전국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및 《AVENUEL》 11월호와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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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운드를 보다 더 가까운 일상에서 만나고픈 독자분들을 위해 ‘AROUND Club’ 혜택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시간 어라운드가 꾸준히 쌓아온 3,200여 개 이상의 기사를 온라인 구독 서비스 ‘AROUND Club’을 통해 공식 홈페이지에서 만나 보세요. 주변을 살펴 모아둔 다정한 이야기를 손에 내어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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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Jeonju)’를 주제로 한 《AROUND》 103호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이미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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