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하고 천박하게》가 왜 사랑받았다고 생각하세요?
훤 요즘 사람들에겐 취약한 면이 있어서 저희 캐릭터가 잘 가 닿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월 맞아요. 저희는 취약한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죠. 너 그 동네 취약짱이잖아, 나도 이 동네 취약짱이거든(웃음). 질문을 듣고 이 책이 왜 사랑받았을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는데요. 일단 조합이 좋았어요. 시각 예술과 청각 예술이 만나는 게 재미있고, 캐릭터가 다른 점도 좋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취약함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독자들은 어쩌면 이 글들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우리의 사진도, 시도, 산문도, 음악도 그런 지점이 있을 텐데요. 독자들이 우리 편지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경험을 했기에 사랑받을 수 있던 것 같아요. 그게 무척 보람찬 일이기도 했고요.
훤 우리는 다른 캐릭터인데 똑같이 취약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싶은 의지가 많은 사람들이에요. 그런 둘이 모여서 편지를 쓰는 데서 뭔가 생겨난 것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편지 특성상 자기가 하는 이야기에만 골몰하거나 상대방이 건네준 이야기에만 반응하게 될 텐데요. 저는 그 중간의 어떤 것을 우리가 했으면 싶었어요. 대화하듯 책을 만들고 싶다고도 생각했고요. 좋은 대화라는 게 그렇잖아요. 모든 구간에서 자기 이야기만 덧대면 좋은 대화가 되기 어려우니까 어떤 지점에선 참고, 덜어내고, 반응이 필요한 부분에선 충분히 잘 반응해야 할 텐데요. 그래서 정확하게 답하고 싶어서 사월의 편지를 여러 번 읽기도 한 거예요. 근데 책이 나오고 보니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우정을 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취약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내 얘기를 하면서도 네 이야기에 반응하는 우정. 뭐든 거부감 없이 꺼내놓고 들어주는 우정. 우리조차도 그런 종류의 우정을 원해서 이런 편지를 쓴 것 같고요.
취약함이라는 데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의미 같기도 한데, 그 취약함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요?
훤 잘 모르겠어요. 작가로서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 우는소리 하는 게 보기 싫을 때가 있잖아요. 반대로 어떨 때는 이 사람이 취약해서 좋다고 느낄 때도 있고요. 사월과 편지를 쓰면서 우리가 비슷하고 또 다르게 연약해지는 모습을 같이 살핀 것 같아요. 때때로 거울처럼 서로를 들여다보면서요.
사월 인간에겐 무조건 약한 부분이 있고, 그걸 보호하고 감추며 살지만 그 약한 부분이 없으면 전체적으로 위험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취약함이란 없어질 수 없는 것, 없어지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월 씨가 책에 “정희진 선생님은 소통이란 불가능하고 소통하려는 시도만이 가능하다고, 완전한 소통은 아마 자기 자신과의 대화밖에 없을 거라고 하셨지. 어쩌면 우리의 편지는 자신과의 소통을 도와주는 거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라는 문장을 쓰셨잖아요. 나와 소통한 지점에 관해서도 들려줄래요?
사월 어려운 질문인데, 전 사실 나와의 소통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와의 소통 역시 하려는 시도만 있는 것 같거든요. 저도 저를 잘 몰라요. 저도 계속 변하는 존재여서 저 자신에게 제대로 된 케어나 필요한 말을 못 해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타인도 저 이상으로 복잡한 존재일 텐데 제가 상대에게 뭔가를 와닿게 하겠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처럼 느껴져요. 우리가 하는 소통은 ‘내가 이걸 주고 싶으니까’ 하고 던지는 말인 것 같고, 그렇게 각자가 던진 이야기로 어찌어찌 소통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소통이 탄생하기도 하고요.
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사월이는 자신에겐 엄청 엄격한데 타인에겐 너그러워요. 타인을 세심히 보듬는 친구고 동료거든요. 근데 자신에게만 모진 거죠. 그게 좀 닮았어요. 그래서 사월이와 대화하는 게 저하고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해요.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가 발현되는 순간을 저희는 일종의 ‘정병’ 모먼트라고 부르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 조금씩 부족하고 아픈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너그럽게 받아주는 친구가 있고, 섬세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든든해요. 생각이 너무 복잡해질 땐 집 앞을 뛰는데, 뛰는데도 해결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사월이한테 전화를 걸어서 “뭐 하냐.” 그래요. 그럼 사월이는 “왜 그래?” 하죠(웃음).
사월 저는 그런 전화를 받으면 집 앞에 나와서 걷기 시작해요. 한 번 통화하면 굉장히 길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걷기에 딱 좋거든요. 한 번 대화하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은 금세 흘러가 있는데 끊을 땐 “그럼 못다 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 꼭 그래요(웃음).
훤 정말이지 그렇게 얘기하고도 할 얘기가 정말 많이 남아 있어요. 요즘은 그런 종류의 우정이 잘 없잖아요. 말 한마디도 너무 조심하게 되고, 전화 걸고 싶어도 ‘바쁠 텐데.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고요. 서로를 침범하는 게 자유로워서, 조금 덜 조심하게 되어서 좋아요. 사월이와의 우정은 제 우정 역사에 새로운 국면을 만든 신호탄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