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선을 나눕니다. 저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툭 튀어나온 보도블록을 발견하곤 뒷사람이 걸려 넘어질까 슬쩍 제자리에 밀어 넣어두고 왔어요. 누구에게 자랑할 일도, 대단한 성과도 아니지만 이런 사소하고 다정한 마음을 남몰래 발휘해 본 기억, 님에게도 있겠지요. 타인의 평가가 닿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내밀한 증거들이 하나둘 쌓일 때, 우리는 외부의 시선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방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솔직한 모습으로 나만의 세계를 꾸려가는 이 과정은 대개 가장 사적인 장소인 ‘집’에서 시작되곤 하지요. 과거 《AROUND》에서 자신의 속도로 고유한 성을 쌓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았어요. 먼저 아침마다 사과를 다양하게 깎으며 그 시간을 사진과 글로 담는 임유청·김재기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꾸준한 루틴이 삶을 어떻게 지탱하는지 보여주는 싱그러운 기록이에요. 이어 동경하는 정원사의 삶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집 안에 들여놓은 김지안 작가의 보금자리도 함께 살펴볼게요. 혼자만의 시간이 어떻게 자신을 더 단단한 사람으로 빚어가고 있는지, 두 이야기를 통해 님도 집 구석구석에 숨겨진 나다운 기척들을 발견하길 바라요. |
|
|
재기와 유청은 독특한 의식으로 하루를 연다. 한 사람이 사과를 깎으면 다른 이가 먹는 것. 특별한 건 없다고? 테이블에 놓인 접시를 보자. 얇게 썰린 과육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펼쳐지고, 레고 블록 같은 조각이 탑을 이룬다. 건축사 재기의 손에서 탄생한 사과 한 접시는 영화 전문 도서 편집자 유청의 사진첩에 담겼다. SNS에 3년간 쌓은 기록은 한 권의 책으로도 탄생했다지. 사과 다섯 알을 들고 이들을 찾았다. 향긋한 내음 폴폴 나고 아삭한 소리가 연신 들리는, 그런 대화였다.
|
|
|
사람들은 왜 두 분의 기록을 좋아하는 걸까요?
재기 평범한 일을 색다른 방식으로 하니까 재밌어 보이나 봐요. 평소에 게시물 반응을 종종 보는데요. 제가 보기에도 예쁘게 만들었을 때는 ‘좋아요’가 많아요. 유청 씨 글이 재밌을 때도요.
유청 오, 분석을 하고 있었구나(웃음)? 우리가 꾸준히 기록한다는 것 자체를 좋게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달라지는 점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요. 어떤 분들은 “전과 다르게 오늘은 이런 느낌으로 만들었네.”라고 평을 하기도 하죠.
다른 점까지 알아챌 정도로 세심히 지켜봐 주는 분들이 있군요.
유청 네. 우리 계정은 동네 골목길에 있는 작은 이자카야 같은 느낌이거든요. 늘 먹던 요리가 있는데 신메뉴가 나오면 재밌잖아요. 아침에사과로 비슷한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프로젝트를 꾸준히 유지해 온 동력은 무얼까요?
재기 좋아하는 사과를 먹는 일이라 계속되는 것 같아요. 또 유청 씨에게 과일을 깎아주는 즐거움도 있고요. 유청 씨는 사과와 일상 사진을 함께 올리는데요. 저와 보낸 시간이 담긴 사진도 있고, 요즘은 어떤 걸 흥미로워하는지 알아가는 재미도 있어서 기록을 지켜보게 돼요.
유청 씨는 사과를 기록하면서 무얼 느끼나요?
유청 시간이 마냥 허무하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안정감을 받아요. 아까 사진과 함께 수영 이야기도 적는다고 말했는데요. 지금은 능숙한 영법인데 몇 달 전에는 죽어도 안 된다는 내용이 있곤 해요. 그 변화 과정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우리는 무의미하게 매일을 보낸 것 같다는 허무함에 사로잡힐 때가 있어요. 그런데 과거의 기록을 살펴보면 단단한 무언가가 만들어져 왔다는 위안을 받죠. |
|
|
통통한 알뿌리를 흙에 심은 멧밭쥐들은 부지런히 움직여 새싹을 줄기로, 꽃망울로 키워낸다. 이윽고 활짝 핀 튤립 송이가 동물 친구들의 아늑한 호텔이 된다는 이야기는 그림책 작가 김지안이 쓰고 그린 《튤립 호텔》의 일부다. 일상을 어떤 시선으로 매만지길래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상상이 탄생했을지 둘러보니, 집 한가득 그녀만의 비밀 정원이 자라고 있다. 낙차가 크지 않은 태도로 성실하게 보듬는 정원에는 말없이도 사랑이 흐른다. |
|
|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봤을 것 같아요. 집 안에 작은 정원을 만들게 된 계기가 뭐예요?
어쩌면 타샤 튜더의 책 한 권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타샤 튜더는 30만 평의 거대한 정원을 거느린 정원사이자 그림책 작가예요. 사랑스럽고 못 말리는 괴짜이기도 한데 19세기의 삶을 꿈꾸며 그 시대의 생활 방식을 평생 따랐다고 해요. 그 말은 전기도 안 들어오는 집에서 양초를 만들어 불을 밝히고, 땔감을 넣은 화덕에 빵을 굽는다는 말이죠. 그보다 놀라운 게 그녀의 정원이에요. 자연주의적 정원을 지향하기 때문에 온갖 풀과 나무, 꽃이 자연의 일부처럼 생기가 넘쳐요. 아름답고 대단하죠.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정말 놀랐어요.
그녀의 가치관과 삶을 닮아가고 싶었던 거예요?
그랬다면 이미 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 같아요(웃음). 뼛속까지 현대인에 병약한 도시인이거든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데다가 시골에 사는 친척도 없으니, 전원의 생활을 몰랐고 그냥 판타지 같았죠. 무턱대고 그녀를 따라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것에 가까워요. 식물과 가까이 살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이런 방식으로 풀어나가게 됐어요. 사실 식물을 키우는 데 재능도 조금 있는 것 같았고요.
(중략)
가드닝을 할 때는 주로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해져요.
생각보다 운명적이거나 낭만적으로 하진 않아요. 오히려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물 주는 것도 알록달록 물뿌리개로 ʻ예쁘게 살살~’ 이런 느낌보다는 기술적으로 빠르게 처리하죠. 주어진 업무처럼 생각하면서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 해결해요. 그렇기 때문에 식물이 잘 자라거나 또는 시들거릴 때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요.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울적해질 필요도 없어요.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을 보듬기도 해요?
그럼요. 정원을 즐기는 건 가꾸는 것과 또 다른 영역이니까요. 제가 한때 다리를 다친 적이 있어요. 3주 정도 바깥 생활 대신 집에서만 절뚝이면서 걷다 보니까 물만 겨우 주고 식물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어요. 마음대로 되는 게 없으니 답답하고 속상하더라고요. 하루는 잠이 안 와서 새벽에 베란다에 앉아 있었는데, 식물들이 물만 줬는데도 대견하게 버티고 있는 거예요. 내재한 생명력이 느껴졌달까. 한마디 오가는 말없이도 식물한테서 위로받았던 기억이 나요. |
|
|
앞선 두 대화는 좋아하는 대상을 향한 마음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일상을 매만지는지 보여줍니다. 그 여운을 징검다리 삼아, 오늘은 한 권의 그림책을 꺼내어 소개하고 싶어요. 김지안 작가가 거실과 베란다의 식물 사이를 누비며 흙을 만지고 물을 주는 정직한 수고, 그 시간을 묵묵히 보듬어온 나날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가 집이라는 가장 가까운 세계에서 튤립과 함께 호흡하며 길어 올린 기록, 《튤립 호텔》입니다. |
|
|
다섯 마리 멧밭쥐가 일 년 동안 정성껏 키워낸 튤립이 근사한 호텔이 되는 이야기예요. 작가는 투박한 알뿌리가 싹을 틔우고, 화려하게 피었다가 다시 구근으로 돌아가는 튤립의 생애를 지켜보며 이 다정한 세계를 구상했습니다.
작가가 가장 아끼는 장면은 꽃이 핀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겨울날 떡갈나무 집에 모여 각자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멧밭쥐들의 일상이에요. 작가는 이를 ‘일상의 촘촘한 빗질’이라 불러요. 평범한 하루를 성실하게 빗어 넘기는 날들이 쌓였을 때, 비로소 꽃이 피는 순간도 의미를 갖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흔히 꽃이 지는 일을 서럽게 여기곤 하지만, 《튤립 호텔》 속 멧밭쥐들은 꽃이 지면 신나는 휴가를 떠난답니다.
영원하지 않은 유한한 즐거움은 담뿍 느끼고, 다시금 그 순간을 위해 정성껏 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얼마나 귀한가요. 찰나의 화사한 기쁨은 기껍게 맞이하되, 다시 돌아온 평범한 오늘을 귀하게 대접하는 님의 곁에 이 그림책이 놓이길 바라요. |
|
|
다음 106호부터는 매거진의 만듦새를 더 단단히 가다듬고 지속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가격이 기존 18,000원에서 22,000원으로 인상됩니다. 한 권의 종이책이 님에게 닿기까지 필요한 정성들을 온전히 지켜내고, 더 밀도 있는 기록으로 보답하기 위한 결정이었음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상 전, 마지막 마음을 전합니다.
4월 5일까지는 현재의 '1년 정기구독 구독료' 그대로, 다가올 한해의 기록들을 받아보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매거진 1년 정기구독: 97,200원 *인상 후 118,800원 한 해에 여섯 번, 짝수달 8일 신간 발송
· 구독 혜택: 온라인 콘텐츠 열람, 48,600 포인트 적립, 오프라인 행사 초대
· 구독 방법: 아래 버튼을 통해 정기구독 신청
|
|
|
“집은 나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매 호 한 권의 매거진을 정성껏 매듭짓는 시간, ‘Question’을 통해 님에게 안부 같은 질문을 건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세 마리 고양이와 함께 복층 집에 터전을 꾸린 박소이·원승연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서로의 일상을 포개어 만든 이 집에서,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채워가고 있을까요? 부부가 집을 정의하는 남다른 시선을 영상으로 전합니다. |
|
|
성근 여름의 옷차림과 두터운 겨울의 외투가 한 거리에서 교차하는 풍경을 마주하는 요즘인데요. 어라운드 식구들과 산책길을 걷다 보니, 이 짧은 봄날이 금세 여물어 더워질까 벌써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우리는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부지런히 봄의 차림을 하자고, 함초롬히 고개를 내민 풀꽃 사이를 지나며 다짐하듯 사무실로 돌아왔답니다. 님도 내일 아침엔 어떤 옷을 새로이 꺼내 입을지, 기분 좋은 고민 속에 아침을 맞이하시길요. 다다음 주 목요일에는 이 계절의 기운을 꼭 닮은 신간 106호의 소식을 안고 찾아올게요. 그때 우리 다시 인사해요! |
|
|
소언 X AROUND: 마음을 전하는 엽서 세트
주변을 관찰하며 작고 느긋한 물건을 만드는 브랜드 ‘소언’과 함께 엽서 세트를 제작했습니다. 안이 비치는 투명한 트레싱지 봉투 속에, 《AROUND》 연재 필진 한수희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을 정성껏 새겨 넣었어요.
엽서 뒷면은 소중한 이에게 건넬 진심을 위해 비워두었습니다. 나지막한 문장 곁에 다정한 마음을 더해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정기구독 시 지급되는 포인트로도 구매하실 수 있으니 홈페이지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보세요.
|
|
|
ABC가 바라본 순간들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시간과 고민이 쌓여 있습니다. 어라운드 브랜드기획팀은 브랜드가 지닌 가치를 발견하고, 고유한 시선으로 이를 다양한 콘텐츠로 풀어내며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들어왔습니다. 앞으로 AROUND News 코너를 통해 우리가 지나온 작업의 순간들을 차분히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결과로 남은 프로젝트를 넘어, 기획이 시작된 배경과 그 안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시선들을 함께 전하고자 합니다. 뉴스레터 안에 담아 차근히 소개해드릴게요.
|
|
|
온라인 구독 서비스, AROUND Club
어라운드를 보다 더 가까운 일상에서 만나고픈 독자분들을 위해 ‘AROUND Club’ 혜택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시간 어라운드가 꾸준히 쌓아온 3,200여 개 이상의 기사를 온라인 구독 서비스 ‘AROUND Club’을 통해 공식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세요. 주변을 살펴 모아둔 다정한 이야기를 손에 내어드릴게요. |
|
|
다달이 구독 : 매달 5,000원
해마다 구독 : 매년 48,000원
다양한 구독 방식이 있으니, 아래편에 정리한 혜택과
함께 마음 닿는 쪽으로 살펴 보세요.
• 《AROUND》의 모든 기사와 비하인드 컷 감상
• 가족 매거진 《wee》, 협업 브랜드 매거진 열람
• 지난 기사를 톺아보는 Editor’s Curation
• 종이책 그대로의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는 E-BOOK
• 나만의 페이지를 소장할 수 있는 북마크 기능
• 생생한 콘텐츠로 감상하는 오디오 북 제공
• 모든 뉴스레터 콘텐츠 열람
• 홈페이지에서 현금처럼 쓰는 ‘AROUND Point’ 지급
|
|
|
‘나와 우리의 집(My Taste, Our Home)’를 주제로 한 《AROUND》 105호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이미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
|
|
어라운드 뉴스레터에서는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또 다른 콘텐츠로 교감하며 이야기를 넓혀볼게요.
당신의 주변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2026 AROUND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Unsubscribe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