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밤에는 지나간 대화가 자꾸 떠오릅니다. 하지 않았어도 됐을 말, 조금 서둘러 꺼내버린 문장 같은 것들요. 괜히 완벽하게 수습하려 할수록 마음만 더 어수선해지고요. 그러다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의 말을 가만히 떠올려봐요. “음악에 실수는 없으며, 그 뒤에 어떤 음을 연주하느냐가 그 실수를 결정할 뿐”이라는 이야기요. 실제로 연주자들은 무대 위에서 음을 잘못 짚었을 때, 오히려 그 음을 디딤돌 삼아 예상치 못한 근사한 변주를 시작하곤 합니다. 우리의 일상도 매 순간 마주하는 즉흥 연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성껏 짜놓은 계획이 어긋나고 서툰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당황해서 멈추기보다 삐끗한 꼴 그대로 나만의 리듬을 믿고 다음 문장을 이어 나가는 덤덤한 태도가 필요하지요. 틀린 음 뒤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오늘 레터에는 그렇게 마음대로 흐르는 일상의 리듬 속에서,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를 잃지 않는 이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국 재즈 씬에서 독보적인 호흡을 보여주는 피아니스트 윤석철의 이야기와 작가 배순탁의 추천 재즈 곡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오늘 님이 맞닥뜨린 사소한 순간들을 유연하게 넘겨줄 좋은 힌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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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 없는 재즈는 곧잘 삶의 배경 음악이 된다. 자연스럽고도 무던하게 귓바퀴를 감아오던 멜로디가 문득 푸근하다고 느낄 때, 신난다고 느낄 때, 감미롭다고 느낄 때 곡 제목과 앨범을 찾아보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자주 윤석철트리오를 만났다. 곡 소개에 깃들어 있는 문장문장을 읽으며 선율이 훨씬 입체적으로 들려온다는 걸 깨달은 어느 날, 재즈 클럽에서 라이브를 듣곤 확실히 알았다. 재즈는, 무언가 다르구나. 그 ‘무엇’을 알고 싶어서 윤석철을 찾았다. 재즈의 둘레를 거닐며 중심을 만들어 가는 그에게서 숨김없는 재즈의 말간 민낯 이야기를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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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주제어가 ‘기록’인데요. 저마다 기록의 방식은 다를 거예요. 글, 사진, 그림, 영상 등 다양할 텐데 음악으로 기록하는 건 어때요?
음악이라고 해서 다른 장르로 기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진 않아요. 재즈 음악으로 한정해서 생각해 보면, 특징적인 점은 연주의 가능성이 아주 많고 정답이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솔직하게 지금의 나를 기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같은 음악이라고 해도 대중가요라면 추후 수정하거나 다듬어서 곡을 만드는 게 가능한데요, 재즈는 즉흥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수정할 수가 없거든요. 연주한 그대로 기록돼 버리는 장르죠. 그래서 의외의 결과를 낳기도 해요. [나의 여름은 아직 안 끝났어]에 수록된 ‘말 없는 사람’이 그런 경우인데, 녹음할 때 감기 기운도 있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거든요. 힘이 하나도 없어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시작했으니 끝을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간신히 마쳤어요. 사실 나중에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녹음했는데요. 집에 와서 들어보니까 생각보다 연주가 좋더라고요. 그다음 날 다시 한번 녹음했는데, 이전 연주를 이길 수가 없었어요. 컨디션이 안 좋다 보니 조금 릴렉스하게 연주됐는데 ‘말 없는 사람’이란 곡의 테마와도 잘 어울리는 결과가 나왔어요. 처연한 분위기가 잘 표현된 것 같아서 아프길 잘했다 싶기도 했죠(웃음).
재즈는 순간에 솔직한 장르로군요.
곡을 만들 때도 그렇지만 특히 잼 세션 때 도드라지는 특성이죠. 잼은 따로 합을 맞추거나 연습해 보지 않고 무대에 올라 즉흥 연주를 극대화하는 연주를 뜻하는데, 말이 아니라 연주로 대화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재즈 뮤지션에겐 굉장히 필요하고, 소중한 연주죠.
석철 씨는 클럽 에반스에서 주기적으로 잼 세션을 진행하고 있죠. 즉흥적인 만큼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정말 많죠. 한번은 무대 뒤편에서 아마추어 재주 연주자들의 잼을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연주를 하다가 틀렸어요. 재즈에는 정답이 없다고 했지만 특정 곡을 연주할 때는 주어진 형식이 있거든요. 이를테면 ‘어텀 리브스Autumn Leaves’나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 같은 음악을 연주한다고 하면, 정해진 큰 틀은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 틀렸을 땐 빠르게 다른 연주자들이 거기에 맞춰 연주를 바꾸거나 틀렸다는 걸 인지하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연주자 중 누구도 틀렸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어요. 한 사람이 틀리니까 또 다른 사람이 틀리고, 또 다른 사람이 틀리고… 연쇄적으로 틀린 연주가 이어지면서 모두 다른 데를 연주하기에 이르렀죠. 재즈 뮤지션들은 무대 뒤편에서 “어떡해, 누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즐거워하면서 “망했다!” 하면서 웃기도 하고…. 저는 마음속으로 “제발 맞춰줘!” 하고 간절히 바랐어요. 그런데 무대 뒤편과는 달리 관객분들은 집중해서 연주를 듣고 계시더라고요. 하드 리스너라면 알아챌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니까요. 결국 연주자와 뮤지션, 관객이 전부 다른 상태로 무대를 보게 됐는데 그 풍경이 재미있더라고요. 결국 어느 순간 한 연주자가 잘못된 걸 캐치하고 조율한 덕분에 연주는 잘 마무리됐어요. 연주가 제자리를 찾아갈 때 뒤에서 뮤지션들끼리 “파이팅!” 하면서 응원하던 게 떠오르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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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변하지 않는 내 공간에서 즐겨 듣는 노래 목록이다. 영감을 길어내기 위한 자극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사람 목소리가 없어야 한다는 거다. 즉, 연주곡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글은 기본적으로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그걸 꺼내서 적는 행위다. 따라서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간섭 행위가 발생한다. 뭔가가 헝클어진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장르적으로는 재즈와 클래식을 선호하는 편인데 세 곡 모두 재즈로 통일했음을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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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김오키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배순탁의 B side〉에서 김오키의 음악을 자주 선곡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만약 재즈가 어렵다면 그냥 딴 거 하면서 들으세요. 그러다가 이 부분 괜찮은데 싶으면 집중해서 듣다가 또 딴 거 하시면 됩니다. 부담 가질 필요가 조금도 없어요.” 나 역시 그렇다.
워낙 김오키라는 뮤지션을 애정하는 탓에 그의 곡 여러 개를 걸어놓고 작업하는 때가 많다. 그중에서도 이 곡은 작업용으로 최상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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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골목을 오랜 시간 지켜온 ‘클럽 에반스’는 한국의 젊은 재즈 뮤지션들이 마음 놓고 연주할 수 있는 작은 보금자리 같은 곳이에요. 연주자의 다정한 숨소리를 바로 곁에서 나누며 리듬에 발을 맞추다 보면, 객석에 앉은 우리도 무대 위 뮤지션과 함께 곡을 완성해 가는 특별한 기분이 들곤 하지요. 에반스가 이곳을 찾는 이들을 손님이 아닌 ‘한 가족(Evanser)’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침 이번 레터에서 소개해 드린 피아니스트 윤석철 님도 아주 오랜 기간 이곳에서 주기적으로 잼 세션을 진행하며 관객들을 만나왔어요. 밤이 깊어갈수록 서먹함은 사라지고 자유로운 대화만 남는 재즈의 진짜 기척이 궁금하다면, 언젠가 조용히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셔도 좋겠습니다. 오늘 님이 마주한 하루의 틈을 메워줄, 기분 좋은 즉흥 연주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A. 클럽 에반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63 2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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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출간 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재료의 산책》이 7쇄를 맞아 한층 산뜻한 분위기의 표지로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거진 《AROUND》에 연재했던 동명의 인기 기사 ‘재료의 산책’을 엮은 단행본입니다. 계절마다 어울리는 제철 재료의 손질법과 계량, 조리 방법은 물론, 일기처럼 써 내려간 요나 작가의 담백한 에세이를 함께 담아 읽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책이 지닌 고유한 이야기는 지금 다시 펼쳐보아도 좋은 안내서가 되어줍니다. 작가의 표현처럼 “마치 산책하듯이 가벼운 기분으로”, 우리 곁에서 움튼 재료의 시간을 다시 한번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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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내 삶에 가져다준 변화는 무엇인가요?”
매 호 한 권의 매거진을 완성할 때마다, ‘Question’을 통해 님에게 작은 질문을 얹어둡니다. 이번 호에서는 찻자리 도구를 만드는 브랜드 ‘물터’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유리와 금속이 만나 아름다운 도구가 되듯, 공예가 김예지 마주한 차의 매력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놓았을까요? 차가 가져다준 고유한 삶의 풍경을 영상으로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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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저녁바람은 어쩐지 너무 달고 귀해서,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온전히 이 순간에만 집중하게 돼요. 머지않아 여름의 한복판으로 성큼 넘어가 버리겠지만, 지금은 그저 얇은 옷깃 사이로 불어오는 서늘한 공기를 기껍게 통과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도 오늘 밤만큼은 낮 동안 쌓인 열기를 부드럽게 식혀줄 저녁 속에서, 밤바람처럼 산뜻한 휴식을 맞이하시길요. 다다음 주 목요일에는 이 계절의 기운을 꼭 닮은 신간 107호의 소식을 안고 찾아올게요. 그때 우리 다시 인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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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왜 또 기막히게 생각나서》 북토크 영상
어라운드 사옥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이웃, ‘어쩌다 책방’과 함께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배순탁 작가와 차의진 에디터가 나눈 책의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음악과 함께 인생과 실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정성껏 담아냈어요.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정기독자분들을 위해 그날의 온기가 고스란히 담긴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나지막한 음악 곁에 님의 다정한 시선을 더해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홈페이지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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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가 바라본 순간들
〈Porch〉는 LG전자 LSR고객연구소가 발간하는 매거진으로 변화하는 집과 공간, 사람들의 삶을 연구와 연결해 기록합니다. 이번 5호는 ‘Kitchen Paradox’ 키친 속 역설을 주제로, 변화하는 식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속 다양한 고객 가치를 살펴봤어요. 특히 1부 ‘좋은 주방의 역설’, 2부 ‘좋은 식사의 역설’로 구성해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주방과 식생활의 기준이 실제 일상에서 어떻게 다층적으로 나타나는지 들여다봤습니다. 전문가와 일반인 인터뷰를 함께 배치해 데이터와 기술이 일상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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