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다양한 방식 중에 방랑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어릴 적 부산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산복도로에 살았어요. 밤에 계단에 앉아서 기타 치고 놀고 있으면 달이 떠올라 바다 위로 노란 길이 생겨요. 그 길을 걸어가는 상상을 했어요. 바다 위를 걷다 보면 지구를 돌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책을 보면 방랑의 이유를 ‘공명’이라고 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공명한다는 것은 상대의 울림과 나의 울림이 함께 울리는 거예요. 주파수가 맞아야 하는 일이죠.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시간대를 지나며, 그곳에서 만난 시간, 풍경, 사람과 공명하는 거예요.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죠?
각 나라의 문화는 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오랜 시간 쌓인 거잖아요. 저도 제가 살아온 환경 안에서 축적된 사유와 습관이 있는 거고요. 그건 억지로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고, 나와 다른 것을 만났을 때 저절로 공명하는 법을 익히는 거예요. 다름을 받아들이는 거죠.
제 첫 여행지는 인도였어요. 그때 아주 많은 충격을 받았는데, 몇 번의 여행이 쌓일수록 처음의 낯섦이 사라지더라고요. 이걸 공명이 덜하게 됐다고 봐야 하는 걸까요?
오히려 공명 관계가 깊어지는 게 아닐까요?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걸 인정하게 되는 거겠죠. 길거리 한복판이나 철도 위에서 큰일 보는 인도인을 보며 처음에는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이제는 그런 세상도 존재하는구나 받아들이는 거죠.
더 이상 여행이 낯설지 않아서 슬퍼졌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네요.
익숙해져서 감동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같은 걸 보고도 자신의 머릿속 기준을 그곳에 맞춰 바라보는 거겠죠.
작가님의 여행 방식은 어떤가요?
(중략) 여행을 떠나면 혼자서 독고다이처럼 있는 것보다는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편이에요. 한국에서 말을 걸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작은 것 하나로도 같이 웃을 수 있잖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좀 더 편해지는 걸까요?
그렇죠. 경쟁자가 아닌 관찰자이기 때문이겠죠. 저는 한국에 살면서도 홀리데이와 방랑을 늘 생각해요. 내 옆의 누군가를 경쟁자로 두기보다는 여행자로 살아가면 언제나 재미있는 아저씨가 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