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선을 나눕니다. 얼마 전 지인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문득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커피 한 잔이 이 테이블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정을 거쳤을까요’, ‘하나하나의 과정에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아요’ 하면서요. 시시콜콜 흘러가는 말 중 일부였지만, 오늘 불현듯 그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면에만 시선을 집중하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이름에, 단편 너머의 장면에 주목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해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쉽게 단정 짓지 않고 말이죠.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어떤 수고와 손길이 깃들었는지 알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니까요. 이번 레터에서는 책 한 권이 내 손에 들리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이연실 편집자와 조아란 마케터, 안팎에서 묵묵히 한 권의 책을 완성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려드릴게요. 책 너머 그들의 문장을 통해 님이 책이라는 세계를 더 다채롭게 경험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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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 끝에는 조그만 이름이 차례로 쌓인다. 이 기록이 당신의 손에 닿기까지 고군분투한 사람들이다. 이 중에서도 기획부터 출간까지 분주하게 뛰는 사람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편집자다. 책의 꼴을 떠올리고 글의 흐름과 단어를 다듬는 사람. 출판사 이야기장수를 이끄는 이연실 대표는 18년 동안 이 일에 마음을 다해왔다. 《김이나의 작사법》, 《부지런한 사랑》 등 그가 매만진 에세이도 여러 권. 연실은 한 사람은 책 한 권과 같다고 믿는다. 오늘도 연실은 마주 앉은 이를 보며 떠올린다. 그는 어떤 이야기를 품은 책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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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한 권은 어떻게 탄생하나요? 연실 씨만의 과정이 궁금해요.
저자를 먼저 찾는 편이에요. 인터뷰를 하면서 이 사람은 어떤 책이 될까 궁리하죠. 좋은 말 한마디를 남길 줄 아는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출판이 결정되면 저자가 보내주는 원고를 살펴봐요. 지금 방향이 좋다거나, 다른 방향으로 써보자는 피드백을 주고요. 동시에 책의 꼴을 생각해요. 사진과 글의 배치, 폰트, 차례, 디자인 등을 궁리하는 거예요.
그다음은요?
교정교열 단계예요. 요즘은 태블릿으로 교정을 보는 편집자도 많은데요. 저는 어떤 판형이든 A3 용지에 크게 뽑고 고치면서 종이 여백에 원문을 수정한 이유를 써요. 작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요. 다음엔 제목과 표지를 정하죠. 그리고 인쇄합니다. 출간 후 홍보까지 끊임없이 다른 부서와 소통한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책을 만들겠어요.
책 처음이나 끝에는 ‘판권’이라고 만든 이의 이름이 담겨요. 거기 적힌 모든 사람을 만나는 단 한 사람은 편집자죠.
(중략) 에세이를 출판하고 싶다면 무얼 소재로 이야기를 쓰면 좋을까요?
자기 이야기요. 낯설고 먼 곳에서 진짜 자신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또 화려하고 큰 이야기로 나를 부풀려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내 이야기는 아주 작은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작은 데서 시작한 이야기란 무얼까요?
재미없는 회사를 다니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아침마다 같은 날짜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었대요. 달이 두 개 뜨고, 호환마마가 닥친 날도 있었죠. 그래서 상사가 힘들게 하거나 어려운 순간이 와도 ‘뭐, 조선에 비하면 내 일상은 괜찮네.’ 하면서 지나갈 수 있었대요(웃음). 저는 이런 이야기 속에 우리가 있다고 믿어요. 작은 이야기를 매일 기록하면 나의 진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어요.
연실 씨도 그런 기록을 남기고 있나요?
네. 그날의 명언을 기록해요. 책이나 영화에서 나온 말,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 농담 속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한 문장을 쓰는 거예요.
편집을 왜 사랑하세요?
편집은 나를 계속 무너뜨리는 일이에요. 원고가 늦게 도착해서 이후 작업이 지연돼도, 인쇄소에서 문제가 생겨도 늘 사과하는 사람은 중간자인 저예요. 어릴 때는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거야!” 했는데(웃음), 지금은 좋아요.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개 숙이고 나를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요. 한 권을 만들고 나면 고마운 사람들도 많이 생겨요. 모두가 사랑스럽고 빛나 보이고, 덕분에 제 인생도 재밌어지죠. 삶의 해상도가 선명해지는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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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또 다른 이름은 아란 부장을 줄인, ‘아부’다. 별명을 지어준 이는 출판사 ‘민음사’ 유튜브 채널의 29만 구독자. 그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다. 회사 생활,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영상으로 자주 보고 들어왔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사람은 그보다 유쾌하고 말랑하다. 나와 다른 장점과 일의 태도를 지닌 동료를 탐구하며, 유연하고 즐겁게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2년 차 에디터가 15년 차 마케터에게 반해버린,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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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뷰에서는 “내가 파는 물건이 책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죠.
맞아요. 아무리 별로인 작품이라도 나라는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식이든 표현 방식이든 사소한 부분이라도 배울 점이 있어요. 저는 물건 사기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책이 제일 죄책감이 덜 들고요. 어떤 것에 관심이 생기면 일단 관련 서적을 사서 봐요. 그 순간 어떤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 가능성을 곁에 꽂아둘 수 있다는 점도 좋죠. 이런 감각을 주는 상품이 많지는 않아요. 책은 장기적으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물건도 아니고, 확실한 도움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사실 출판 마케터로서 직업병이 있다면 책의 단점을 잘 못 보는 거예요. 혹독하게 비평하는 순간 팔기 어려워지거든요. 장점만 발굴하는 식으로 독서하는 게 병이라면 병이죠.
마케터로서 이런 독서 문화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클 것 같아요.
저는 독서 모임을 헬스장에 비유하곤 해요. 부모님 세대는 삶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건강 관리를 하셨는데 이제는 20대 초부터 헬스장에서 PT를 받잖아요. 독서는 하기 싫어도 일찍부터 해야 하는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책이라는 게, 골방에서 빙글빙글 도는 안경 쓰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죠.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독서라고 답하면 잘난 척한다는 인상을 줄 것만 같고요(웃음). 독서는 진지하고 학술적인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가볍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문화 활동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아란 씨는 독서 문화를 어떻게 즐기세요?
7-8년 전부터 한 개 이상의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있어요. 여행 가서 서점을 구경하거나, 그 지역이 고향인 작가의 책 혹은 배경인 소설을 읽죠. 이런 활동을 주변에 추천도 하고요. 독서 모임은 일정한 독서량을 유지하고 싶어서 참여하는 편이에요. 아무리 출판사에서 일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영상 콘텐츠에 잡아먹히기 쉽거든요(웃음). 헬스장 등록한 것처럼 독서 모임을 다니고 있어요.
책의 즐거움을 알리는 데 민음사TV가 앞장섰다는 평가가 많아요. 유튜브 활동이 출판계에서는 흔치 않은 발걸음인데요.
‘세계문학전집’ 같은 시리즈가 많은 민음사는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를 출판하는 브랜드예요. 꾸준히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는 상품 덕분에 순간의 관심이 중요한 단행본 마케팅에만 집중하기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브랜딩을 할 여력이 생기죠. 그래서 시간과 인력, 비용을 유튜브 같은 활동에 투자하고 있고, 어느 출판사보다 브랜딩 활동이 활발해요. 그런데 유튜브가 도서 매출에 직접 도움이 된다고 답하기는 어려워요. 갑자기 많이 팔린 상품이 영상에 출연한 경우도 있고 아니기도 하거든요. 책이란 게 흥망 요인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유료 멤버십인 ‘민음북클럽’ 가입자는 많이 늘었어요. 확실히 유튜브가 일조했다고 생각한 건, 가입 선물로 약 600권의 민음사 도서 중에서 원하는 책 세 권을 고를 수 있는데요. 유튜브가 커지기 전에는 인기 도서가 매년 비슷했는데, 이제는 좀처럼 선택된 적 없던 작품이 꼽히는 경우가 생겼어요. 보면 채널 출연자가 추천한 작품이더라고요.
유튜브는 대중에게 민음사를 젊고 유쾌한 브랜드로 각인한 계기가 되었다고도 생각해요. 단순한 책 소개보다는 ‘세계문학전집 월드컵’처럼 재밌는 기획을 더하거나, ‘부장 실수 배틀’, ‘신입 사원의 하루’처럼 직장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가 많죠.
처음엔 유튜브가 강박적으로 민음사의 무게감 있는 이미지를 벗어나길 바랐어요. 무조건 젊고 새로운 느낌을 주길 원했죠. 하지만 고루한 느낌을 꼭 없애야 좋은 게 아니라 잘 활용하면 좋다는 걸 깨달았어요. 보는 사람들이 우리 회사가 ‘생각보다’ 재밌고 어리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알고 보니 반전이 있었네, 딱 그 정도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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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건져 올리고, 독자의 품으로 전해주는 일을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봤어요. 그중 이연실 편집자는 출판사 이야기장수를 이끌고 있기도 한데요. 그가 출판사를 꾸리며 정성 들여 매만진 책 《40세 정신과 영수증》을 이어서 소개하고 싶어요. 《40세 정신과 영수증》의 저자 정신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연실 편집자와의 만남에 대해 '이연실 편집자가 우연히 내 앞에 선물처럼 나타났다'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이 둘의 품에서 선물처럼 꾸려낸 한 권의 책은 어떤 모양새를 지녔을까요? 정신 작가의 이야기는 《AROUND》 102호 기사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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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40세 정신과 영수증》 정신 | 이야기장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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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출간된 《24세 정신과 영수증》에는 우연히 모으던 영수증에서 삶의 자취를 발견한 정신의 기록이 담겨 있어요. 사고 먹고 쓰고 택시나 버스를 타는 등 누군가에게는 그저 소비의 증거일 뿐인 영수증에 그는 일상에 곁하는 감정과 감각의 증거를 메모로 남겼습니다. 그 뒤 20년이 흘러 《40세 정신과 영수증》이 출간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가족을 꾸리길 바라며 마흔 살에 훌쩍 미국으로 떠난 그는 오롯한 삶에 대한 해답을 잔잔한 걸음으로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찾아가요. 그 걸음 역시 영수증과 함께 용감하고도 다정한 기록이 되어 독자들 마음에 살포시 다가갑니다. 《40세 정신과 영수증》 출간과 동시에 절판되었던 《24세 정신과 영수증》도 출판사 이야기장수와 함께 새 얼굴로 인사를 건넸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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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102호에서 ‘공예가’의 기사를 읽어보셨나요? “비어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예술의 조각을 채운다”는 슬로건을 가진 공예가와 함께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어라운드 매거진 인스타그램에서 ‘북커버’, ‘도구집’ 중 받고 싶은 선물을 댓글로 작성해 주세요. 추첨을 통해 공예가의 북커버와 도구집을 드립니다. 발수 코팅된 캔버스 원단의 북커버는 어디서나 집처럼 편안한 독서를 제공하고, 도구집은 펜과 가위 등 일상에 필요한 도구를 한데 모아 놓고 사용할 수 있어요. 공예가의 단정한 물성으로 독서에 즐거움을 더해 보세요.
Check!
· 기간: 8월 26일(화)―8월 31일(일)
· 당첨자 발표: 9월 1일(월) (개별 DM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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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매거진 한 권이 오롯한 모습으로 완성될 때마다, ‘Question’을 통해 독자분들께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크리에이터 ‘쩜’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신시연의 책 취향을 엿보았습니다. 그가 올여름 가장 나누고 싶은 책은 무엇일까요?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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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도 지났고 9월도 다가오는데 더위가 한풀 꺾이길 바라시진 않았나요? 여전히 더위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여 괜스레 보로통한 마음이 드는 며칠이었습니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인지, 가끔은 상심하지 않기 위해 희망을 아예 내려놓는 쪽을 택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기대는 나의 시선을 미래로 향하게 하죠. 지금의 불편이나 어려움에만 머무르지 않고 ‘곧 올 좋은 일’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니까요. 조여왔던 마음을 느슨하게 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계절을 여전히 기다려보려 합니다. 다음 뉴스레터에는 어라운드 식구들의 취향을 안고 찾아올게요. 님도 기대하는 마음 가득 안고 다다음주 목요일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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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리뷰ㅣ매거진사 브랜드 PM이 일하는 방식
《AROUND》 100호 출간을 기념하여 로컬스티치에서 나눴던 어라운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AROUND》는 2018년 브랜드기획팀을 창설해 전문적인 브랜드 프로젝트 매니징을 시작했는데요. 감도와 메시지를 담는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브랜드PM의 일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영상을 확인해 보세요. 토크 콘텐츠는 온라인 구독 시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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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Hiring !
어라운드에서 함께 마음을 나눌 동료를 기다립니다. 서류 접수는 9월 21일(일) 자정까지 받을 예정이니, 관심을 갖고 지켜본 분들은 마감 일자를 꼭 확인해 주세요. 여러분들의 지원을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릴게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버튼을 눌러 살펴보실 수 있어요.
· 매거진팀, 브랜드기획팀 디자이너 모집
· 브랜드기획팀 프로젝트 매니저(PM) 모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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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구독 서비스, AROUND Club
어라운드를 보다 더 가까운 일상에서 만나고픈 독자분들을 위해 ‘AROUND Club’ 혜택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시간 어라운드가 꾸준히 쌓아온 3,200여 개 이상의 기사를 온라인 구독 서비스 ‘AROUND Club’을 통해 공식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세요. 주변을 살펴 모아둔 다정한 이야기를 손에 내어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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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운드 뉴스레터에서는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또 다른 콘텐츠로 교감하며 이야기를 넓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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