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선을 나눕니다. 님,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여행이나 고향 방문으로 멀고 가까운 도시를 찾은 분들도 많았겠지요. 님이 새로운 곳을 탐색하는 방법이 궁금해지는 오늘, 제 여행법을 먼저 소개할게요. 저는 낯선 동네에 가면 먼저 지명의 뜻을 검색합니다. 그건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는 재미있는 방법이 되거든요. 예를 들어 ‘명동’은 ‘밝은 동네’라는 뜻이에요. 성탄절 조명으로 반짝이는 백화점 외벽이나 환히 불을 밝힌 상점들을 보면 ‘명동은 이래서 명동이구나’ 하고 생각하죠. 그곳의 인상을 오래 남기는 제 방식이에요. 이번 여름 전주에서도 같은 일을 했어요. ‘전주’가 왜 ‘온전한 마을’인지 떠올리며 책에 실을 말과 장면을 찾았죠. 자연과 도시, 여유와 분주함이 고르게 어우러진 덕에 그런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가까운 지역으로 산뜻하게 걸음을 옮겨 보길 권하는 이야기들을 엮었습니다. 님이 도착한 도시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곳에서 어떤 뜻을 발견하셨나요? 그 답을 배낭에 넣어 우리에게 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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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경주에 살고 있나요?” 경주에 사는 사람 중 이런 질문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40여 차례 경주 여행을 왔던 여행자, 연구자, 문화해설자, 그리고 한옥에 사는 카레집 주인. 이 모든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일본인 아라키 씨는 경주에 온 지 5년이 넘은 지금도 종종 그 질문을 듣는다. 도쿄와 교토에서 살던 그가 경주에 정착한 이유는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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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고분이에요. 무덤이 삶의 터전이랑 가까이 있잖아요. 그런 도시에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저는 고분을 현대식 무덤이 아니기 때문에 일종의 조형물로 봐요. 사실 삶과 죽음의 공존이라는 건 어딜 가도 발견할 수 있어요. 어디에서건 누구에게나 죽음이란 오는 것이고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다만 경주에는 고분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가시화되어 있을 뿐이죠.
경주의 고분을 보면 죽음에 관한 두려운 생각보다는 경이가 느껴져요.
고대인이 어느 정도까지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고분과 산의 능선이 참 조화로워요. 특히 봉황로 길가의 고분과 봉황대에서 산을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죠. 조선 시대의 사람들은 봉황대를 무덤으로 보지 않았어요. 풍수지리적으로 경주의 중심이라 그런 이름을 붙인 거죠. 또 첨성대에 가면 주변의 고분과 풍경을 함께 바라보세요. 자연이랑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아름답거든요.
경주를 숱하게 여행한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관광’이라는 말이 붙으면 자꾸 어딘가 가야 할 것 같지만, 욕심내지 말고 쉬러 오면 좋겠어요. 일상에서 시간에 충분히 쫓기잖아요. 경주에서는 나무 냄새를 맡으며 다니시면 어떨까 싶어요.
아라키 씨를 만나러 오는 길이 참 차분하고 좋았어요. 이런 경주의 분위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간단히 말하면 문화재랑 관련이 있어요. 문화 유적을 지키기 위해 근처에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없어요. 규제 덕분에 유지되는 부분이죠. 남산동은 시내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지만 도시 근처에서 이렇게 한가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예요. 서울을 보세요. 이런 시골까지 가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고요.
경주를 다니다 보니 새로운 변화가 반갑기도 하지만 경주만은 이대로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라키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변화가 계속 일어나는 쪽에서 바라보면, 변함이 없다는 건 늘 신선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현대사회에선 변함이 없다는 건 변하고 있다는 거랑 마찬가지죠. 이런 빠른 세상에서 ‘변함없음’에 가치를 부여하면 경주는 소중한 도시로 인식되지 않을까요? 세상의 속도처럼 변할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게 경주예요. 그럼 다른 것과 똑같이 되어버리니까요. 변함없음의 소중함, 변함없음의 부가가치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빠른 세상에서 모처럼 잘, 경주 같은 도시를 지켜왔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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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는 콘크리트들이 자아내는 소음 속에서 건축가 고성호는 부산을 유랑하며 대지로부터 탄생한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기장의 바다와 수영강, 금정산과 마주 보고 선 그의 공간에 들어서며 그곳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를 한다. 몇 개의 계단을 오른 뒤 곳곳을 누비고 나면, 좋은 대화를 나눈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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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로 펼쳐진 강변이 너무 멋있네요. 그간 여러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셨지요. 이 사옥도 직접 설계하신 거죠?
맞아요. 제가 설계를 맡았어요. 저희는 건축이 어떤 지역이나 도시의 색깔을 부여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저 물량 중심으로 만들어진, 표정 없는 건축물은 지양하려 하죠. 주로 맡는 프로젝트도 카페나 레스토랑처럼 많은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상업 공간이고요. 공간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그 지역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거든요. 그런 전반적인 부분들을 구상하고 감독하고 있지요.
인터뷰하러 오면서 사옥 주변 풍경을 쭉 훑어봤거든요. 강변 너머엔 고층 아파트들이 “표정 없이” 나란히 서 있는데, 회사가 위치한 동네 쪽은 건물들이 상대적으로 낮더라고요.
부산 하면 바다, 강, 산 같은 자연물이 대표적인데요. 건축물들이 자연환경을 지배하는 광경을 보면 권위적이다 못해 폭력적이라고 느껴요. 이제껏 부산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많이 작업했는데 지역 주변 환경을 살피며 맞춰서 진행했어요. 그게 원래 우리의 건축이기도 하고요. 옛날 한옥만 봐도 ‘안채’, ‘사랑채’, ‘행랑채’처럼 구역을 쪼개서 사용자들이 쓸 공간을 구분 지어 놓았잖아요. 아무리 넓은 면적을 차지하더라도 공간을 장악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들어요. 오히려 자연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렇다면 사무실이 위치한 망미동은 어떤 환경을 품고 있나요?
앞에 보이는 강이 수영강인데요. 부산의 대표적인 명산인 금정산이 발원지예요. 계곡물이 하천을 따라 내려오다 합쳐지면서 바다로 향해가는 거죠. 이 구역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이다 보니까 생태계가 풍부해요. 바다에 사는 생물과 강에 사는 생물이 사이좋게 공생하는 공간이죠.
부산 하면 보통 바다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강 주변에 자리를 마련하신 거네요.
강과 바다가 주는 느낌이 또 다르잖아요. 오래된 비유를 해보자면, 바다는 아버지 같고 강은 어머니처럼 느껴져요. 저희는 건축을 통해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어머니의 너른 품을 닮은 이곳을 택했죠.
동네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건축가님의 시선이 남다른 것 같아요. 잠재되어 있던 가능성을 끌어내려는 하나의 시도처럼 느껴져요.
어떤 상업 공간 하나에서 탄생한 마침표가 그 지역을 다시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거든요. 그게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거예요. 메마른 우물의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 펌프에 물을 한 바가지 붓듯, 건축물이 지역에 관해 다시금 고찰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죠. 지역민들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이 어떤 곳인지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겠죠. 그로부터 삶의 질이 높은 장소가 탄생할 수도 있을 테고요. 특히 칠암사계는 주변이 죄다 영업장인데요. 고향을 떠났던 자녀들이 잠잠하던 어촌 마을에 다시 돌아와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와요. 어느 한 공간이 부흥하면, 자연스레 주변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시너지를 내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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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기사로 부산과 경주를 살펴봤다면, 이제 전주의 면면을 들여다볼 차례예요. 전주의 또다른 이름은 ‘책의 도시’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전주는 조선시대부터 우수한 한지를 만들어 왔고, 나라가 혼란할 때도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냈어요. 특히 관청과 민간에서 목판 인쇄물 ‘완판본’을 보급하며 출판 문화를 이끌었다죠. 이 명맥을 이어 전주는 도시 곳곳에 공공 도서관을 세웠는데요. 단순히 책만 가득하기보다 특색 있는 소재로 알차게 꾸려진 공간이 많습니다. 그중 전주의 아름다운 자연까지 감상할 수 있는 도서관 세 곳을 소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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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첫 번째로 찾은 이곳은 시詩 특화 도서관이에요. 해발 360미터의 학산을 오르다보면 맏내제라 불리는 장천저수지가 나타납니다. 저수지 맞은편 언덕에 작은 오두막 같은 모습으로 자리한 공간이 바로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이죠. 내부는 어디에 눈을 두어도 온통 시집뿐이며, 숲속이 보이는 널찍한 통창을 곁에 두고 시와 함께 휴식을 즐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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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중호수도서관
음악 특화 공공 도서관입니다. 둥근 곡선 형태의 공간 앞에는 고요한 아중호수가 펼쳐져 있어요. 일반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소장 자료와 더불어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음악 장르 도서 열람과 함께 고품질 스피커 청음도 가능하답니다. LP 감상 코너도 마련되어 있으니 산과 호수를 바라보며 음악과 책에 푹 잠겨봐도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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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정도서관
전북대학교 근처 덕진공원에는 커다란 한옥이 두둥실 떠 있어요. 전주와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은 한옥 도서관, 연화정도서관입니다. 콘셉트에 걸맞게 한국 전통문화 관련 도서, 국내문학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한지 조각보 무드등 만들기, 자개 냉장고 자석 만들기 같은 전통 체험 프로그램 역시 운영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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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103호는 ‘전주’를 담았습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동안 걷고 머물며 이야기한 여러 장소, 그리고 전주 사람들이 추천하는 곳들을 한데 모았어요. 어라운드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한 권의 책을 오롯이 느껴보세요. 미식의 도시, 책의 도시에 걸맞은 53개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선이 새롭게 닿길 바랍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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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서 긴소매 옷을 꺼낸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날씨는 한층 추워졌어요. 해도 확연히 짧아진 탓에 나들이는 어렵겠다 싶어 아쉬움도 남는데요. 따사로운 계절은 이듬해가 되어 고개를 내밀 테니 더 추워지기 전에 바깥을 바지런히 걸어보면 어떨까요? 도톰한 외투도 꼭 챙기시고요. 다음 뉴스레터에는 어라운드 식구들의 취향을 안고 찾아올게요. 다다음주 목요일 아침에 인사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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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를 톺아보며, Editor’s Curation
매달 첫 번째 화요일, 한 가지 주제로 어라운드가 톺아본 지난 기사 네 편을 소개해요. 이번 큐레이션의 주제는 ‘가까운 도시의 얼굴’입니다.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얻기 위해 우리는 먼 이국으로 걸음을 옮겨보곤 합니다. 하지만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거나 한두 시간 거리에 떨어진 가까운 도시에도 새로운 장면은 놓여 있어요. 이번 큐레이션에서는 대구, 서울 근교, 부산과 창평에서 어라운드가 발견한 조각들을 실어 보냅니다. 기사를 읽으며 멀지 않은 땅이 들려주는 낯선 이야기를 건져 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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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ACE Magazine: STELLAR & SONATA»
현대자동차 헤리티지 매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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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운드와 현대자동차가 함께 만든 «RETRACE Magazine: STELLAR & SONATA»의 발행 소식을 전합니다. «RETRACE Magazine»은 휴머니티를 향한 현대자동차의 여정과 따듯한 시선을 담은 헤리티지 매거진입니다. 두 번째 시리즈는 40년 전부터 지금까지 국민과 함께 시대를 달려온 쏘나타와 그 전신인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중형차 스텔라의 이야기를 담아내었습니다. 익숙함 속에 자리한 스텔라와 쏘나타의 이야기를 통해, 오래될수록 더 깊어지는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짚어봅니다.
«RETRACE Magazine: STELLAR & SONATA»는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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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구독 서비스, AROUND Club
어라운드를 보다 더 가까운 일상에서 만나고픈 독자분들을 위해 ‘AROUND Club’ 혜택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시간 어라운드가 꾸준히 쌓아온 3,200여 개 이상의 기사를 온라인 구독 서비스 ‘AROUND Club’을 통해 공식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세요. 주변을 살펴 모아둔 다정한 이야기를 손에 내어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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